의미있는 삶을 위하여
Life is Moment = Life in Moment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면, “내 인생, 뭔가 공허하다."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 60만 조회수 강연콘서트 「공허의 시대」 최신판 Part 1
https://www.youtube.com/watch?v=kJkN_8Bs7Q4
가끔 그런 날 있어요.
문득, '오늘 하루가 어땠지?' 근데 뭔가 쎄합니다.
뭔가 좀 비어있는 이 느낌 뭔가 공허한데?
도대체 공허감은 왜 우리를 찝찝하게 만들까요? 왜 불행하게 만들까요?
인간의 인생은 유한합니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정해놓고 태어났어요.
어떤 분이 불행의 몸부림치고 있어요?
불행에 몸부림치는 이유예요.
이것은 인생 전체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3~40년 만에 돌아오는 거대한 불행감.
인간의 가장 큰 최대 불행감 중의 하나인 바로 이거죠. 방치된 공허의 대 복수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해준 선물을 완벽하게,
하나도 낭비 없이 신의 뜻대로 Full로 이용한 한 사람이 여기 잠들어 있다.
이것은, 이렇게 말할게요.
감히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이것은 최고치 인간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오늘의 주제, 그리고 여러분이 오늘 여기에 오신 이유는 이 단어 하나 때문이죠.
실제로 콘서트 제목에 들어있는 단어이기도 하고요. '
공허감.'
물론 여기 오신 분들 모두 정도는 다릅니다.
어떤 분은 '그냥 좀 찝찝해.' '가끔씩 공허감 같은 게 지나가는데' '크진 않고, 좀 찝찝해.' 이런 정도도 있고요. 어떤 분은 '저는 지금 공허감이 너무 심각합니다.' '인생이 불행한 지경이에요.' 이런 분들도 있고요.
아니면, 이런 분도 있어요.
'나는 공허감에 대해서 직접 느껴보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어쨌든 하도 여기저기서 들리는 단어이다 보니까'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관심은 있어요.' 이렇게 조금씩 온도는 달라요.
하지만 어쨌든 여러분은 이 단어 때문에 오신 거고요.
공허, 공허 하는데, 참 추상적인 얘기죠?
저 실체가 무엇이냐?
만약 여러분이 그 실체를 듣기 위해 오셨잖아요?
잘 오신 겁니다.
이건 대한민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우리가 제일 잘하는 일입니다.
왜냐? 우리는 그걸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고, 그걸 우리는 ‘코드’라고 하거든요.
저희가 ‘코드’라고 할 때 좀 유식한 말로 뭐라고 하냐면 '무의식을 의식화한다.'라고 해요.
무의식이 뭔지 아시죠?
뭔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전혀 잡을 수 없어.
근데 그걸 의식화한다는 게 뭔지 아세요?
눈에 보이게 해 드린다는 거예요.
'공허감, 공허감, 하는데' '도대체 공허감이란 게 정확하게 뭐고’ '우리가 언제 느끼느냐?' 제가 묘사를 통해서 의식화해 드릴게요.
우리가 하루를 삽니다.
아침에 일어났어요.
그리고 학생은 학교에 갈 거고, 직장인은 일터로 갈 거고 아직 취업 준비 하시는 분들은 공부를 하겠죠?
가서 일을 해요.
열심히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영혼을 빼놓고 잠시 멍때리기도 하고 중간에 쉬었다가, 또 일하다가 그러다가 퇴근, 방과 후, 아니면 공부 시간이 끝나고 친구랑 잠깐 만납니다.
그래서 친구랑 카페 같은 데, 요새 좀 핫하다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하고, 친구랑 수다 떨고 집으로 오면서 서로 인스타그램으로 '너 오늘 참 예뻤어.' '좋아요' 한 번 눌러주고 그다음에 집에 옵니다.
좀 힘들죠, 하루가? 밥 먹으면서 어때요? 밥만 먹으면 좀 그렇잖아요? 유튜브 틀어놓고 보면서, 아니면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면서 밥 먹고, 유튜브 보고, 그러다가 밤이 돼요.
피곤해요.
이제 자려고 딱 눕습니다.
근데 가끔 그런 날 있어요.
문득, '오늘 하루가 어땠지?' 근데 뭔가 쎄합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그런 하루, 전형적인 현대인의 일상이죠?
근데 어느 날 '나 오늘 하루 잘 살았나?'라고 자문했을 때 그때 문득 드는 감정이 뭐냐면, 저겁니다. '뭔가... 공허한데, 오늘 하루? 이거 뭐지?' 평범한 일상이에요.
나름 이것저것 하면서 부산하게 살았어요.
근데 자기 전에 '뭐지?' 뭔가 좀 비어있는 이 느낌, '뭔가 공허한데?' 도대체 뭐가 빠진 걸까요?
이게 빠져서 그런 겁니다.
<치열>이라는 단어예요.
일단 오해 소지 하나만, '아뇨, 저 하루 종일 바빴어요.' '저 그렇게 게으르지 않았어요.'
방금 제가 묘사해 드린 일상도 나름 바쁘게 산 겁니다.
특히 한국인들, 얼마나 성실합니까?
바쁘디바쁜 현대 사회, 나름 바쁘게 살아가죠.
근데 저 치열은 그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고요. 밀도..
그냥 하루 종일 양적으로 '이것저것 많이 했다.'가 아니라 진짜 하나를 치열하게,
좀 다른 단어로 바꿔 볼까요?
뭔가에 전념하고 몰두하는 것.
그걸 안 했기 때문입니다.
반대 경우를 한번 생각해 봐요.
오늘 되게 중요한 건데요.
여러분의 경험을 한번 떠올려 봐야 합니다.
과거에, 뭔가 하나에 굉장히 치열하게 전념하고, 몰두하고 100% 쏟았던 그런 기억 하나만 떠올려 보세요.
대표적인 게, 우리가 가장 치열하게 전념하고 몰두할 때가 보통 고등학교 학창 시절이죠.
물론 뭐, 공부를 항상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그때의 어느 하루, 일주일. 아니면 취업 준비할 때 그리고 치열이라고 하니까 여러분이 오해하시는 거, '결국은 엄청 성실하게 일하고, 공부하고' '살라는 메시지인가요?'
그게 아니에요. 놀 때도 치열하게 전념해서 놀 수 있잖아요.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으로 비유해 볼까요?
친구랑 건성건성 얘기하고, 그냥 카페에 가서 서로 핸드폰 보고 오는 게 아니라
진짜 친구한테, 서로에게 몰두해. 깊이 대화하고 딱 집에 오면 '아, 공허하네.' 이런 생각 안 들어요.
친구를 만났지만, 친구한테 집중하지 못하고 아주 밀도 높은 치열한 대화를 하지 못하고 또 치열하다고 해서, 토론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둘에게 서로 몰두해서 깊은 교감을 나누고 집에 온 게 아니라 앉아서, '카페 예쁘다~ 사진 찍자!' '다 봤다, 가자. 안녕!' 이랬을 때의 공허. 무조건 '성실히 일했나? 열심히 일했나?' 그 치열이 아니라,
노는 것도, 심지어 쉬는 것도.
여러분, 쉬기 위해 호캉스 간다고 하잖아요?
호캉스 가서도 인스타 사진 찍고, 유튜브 보고 그리고 돌아오면 뭔가 공허하잖아요.
제대로 쉰 것 같지 않잖아요.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완벽하게 쉬겠어.' 이것도 치열한 거야.
그랬던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랬던 날이 있을 거예요.
최근일수록 더 좋아요.
그날 밤에 '나 왠지 공허하네.' 이런 생각은 보통 안 들어요..
혹시 들었다면, 저도 그렇게 치열했는데도 공허할 때 있거든요?
그건 좀 있다 답이 나오는데 어쨌든 그건 아주 희귀한 케이스고, 대부분은 그럴 때 어떻습니까?
인간은 공허함을 안 느껴요.
심지어 그 치열함이 아주 극에 달하잖아요?
엄청난 만족감도 따라와요.
공허감의 반대말, 아주 그 정반대에 있는 극단적 만족감.
뭔가, 하루가 꽉 찬 느낌.
공허함이 '오늘 하루가 빈 거 같아. 가슴이 허전해.'라면 이 감정은 '가슴이 뿌듯해.'
몸은 힘든데 잠들기 전에 뿌듯하면서 무언가 꽉 찬 느낌이 들죠.
이것저것 말씀드렸는데, 요약하자면 이렇게 묘사할 수 있어요.
하루하루, 나름 살아내고 있어요.
우리는 나름 부산하게, 나름 바쁘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죠?
그러나 그 어떤 것에도 100% 쏟아붓지 않을 때 치열하거나 전념하거나 몰두하지 않을 때 그때 문득문득, 자기 전에 가끔씩 드는 마음.
뭔가 남아도는 것 같은 마음, 꽉 차지 않는 것 같은 마음.
그런 허한 마음을 ‘공허감’이라고 하는 겁니다.
일단 제가 생활 예시로 묘사하면서 의식화해 드렸어요.
이제 더 깊게 들어가 보죠.
'알겠는데, 도대체' '뭐가 꽉 차지 않는 걸까요?'
또는, '공허감과 충만감을 비교했는데요.'
'공허감이란 건 왜 불쾌한 감정이고' '충만감은 어째서 만족스러운 감정일까요?'
단어 하나씩, 한 글자씩 가볼게요.
일단 공허에서 '공(空).' 충만에서 '충(充).' 공(空)이 뭐예요?
'비어있다.'
충(充)은 뭐예요?
'차 있다'는 거예요.
도대체 뭐가 찬다는 거냐?
왜 치열하면 차고, 치열하지 않으면 도대체 뭐가 비는 거냐?
이걸 설명해 드릴게요.
'감'이라는 글자가 붙었죠.
감은 결국 뭔지 아세요?
우리 마음을 얘기하는 거예요.
직관적으로 이렇게 묘사됩니다.
이게 여러분 마음이에요.
원으로 묘사했죠? 꽉 차지 않은 겁니다.
저게 빌 공(空)입니다 저기서 빨간 부분이 뭔가 차 있는 거고요.
저 검은 부분이 비어있는 부분입니다.
아주 간단해요. 공허감을 이렇게 묘사한 겁니다..
그런데 왜 치열하지 않으면 저렇게 비어 있을까요?
그럼 저 비어 있는 부분은 뭐가 빈 걸까요?
거꾸로 빨간 부분은 뭐가 찬 걸까요?
하루 종일 여러분들은 뭘 했죠?
일하고,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이 강연장에 오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했죠?
눈앞에 있던 그 일, 취미, 경험. 그런 것들이죠.
그런 것들로 여러분의 마음은 채워지는 겁니다.
치열하게 안 했어요.
회사 가서 멍하게 있었어요? 그럼 일로 가슴이 가득 차지 않은 거죠.
친구를 만났어요.
친구한테 몰두하지 않았어요?
친구와 교감하지 않았어요?
그의 고민과 일상에 대해서 집중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마음속에 다 안 들어온 거죠.
그럴 때 있잖아요, 집에 가면서 '아까 걔가 뭐라고 했는데?' '내가 핸드폰 보느라고 못 들었네.'
그러면 그 친구에 대한 것들로 가슴이 차지 않고 비어 있는 거죠.
저겁니다.
일단 공(空)을 제가 묘사한 거예요.
'그럼 반대는요?' 충(充)은? 유추되시죠? 꽉 차 있는 겁니다.
왜 꽉 차 있을까요?
우리가 눈앞에 있는 일이나 취미, 어떤 경험을 아주 치열하게 했기 때문에 그게 가슴으로 다 끌려온 거죠.
이제 더 깊게 들어가 보겠습니다.
도대체 공허감은 왜 우리를 찝찝하게 만들까요?
또 어떤 사람은, 왜 불행하게 만들까요?
반대로 충만감은 왜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까요?
그 '왜?'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정말로 여러분의 무의식, 심연으로 지금부터 들어가려고 해요.
그리고 이걸 위해서 누구나 당연하게 쓰는 말 한마디를 의식화해 드리겠습니다.
'인생을 산다.'
제가 앞에서 계속 묘사해 드린 게 뭡니까?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살아내는 데 살면서 생기는 감정이 공허감, 충만감이죠.
이걸 제대로 알려면 '산다.'가 뭔지도 정의해야 해요.
1번, 맨날 우리가 쓰잖아요?
'잘 살아야지.' '나 요새 못 사는 거 같아.'
그래서 '산다.'가 뭡니까? 너무 날아가는 말이죠?
2번, '저걸 의식화하겠다고? 정의하겠다고?'
네. 굉장히 집요하죠?
그렇게 파고들어 가야 모든 것들이 명확해지고 그 끝에서 또 어마어마한 것들을 얻을 수 있거든요..
어마어마한 게 나올 겁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릴게요.
이 부분이 앞부분에서 제일 중요한 내용이니까 지금부터, 아주 집중도 좋으시지만 좀 더 집중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인생을 산다.'가 뭘까요?
이것도 일단 쉽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친구한테 물어본다고 해 보죠.
'우리 1년 만에 만났다. 어떻게 살았니?' 라고 하면 뭐라고 얘기합니까?
'나 있잖아, 1년 동안 왜 연락이 안 됐는지 알아?'
'나 여행하면서 살았어.'
'와~ 부럽다.'
여행을 다니면서 살았다고 얘기하죠.
내가 해 왔던 어떤 경험들을 얘기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는 없죠.
'너 뭐 하고 살았니?'
'나 소화하고, 호흡하고, 순환하고, 배설했다.'
물론 당연히 그것도 했지만, 그건 '생존'이라고 하죠.
근데 보통 고등 동물인 인간이 살아있다고 할 때는
그런 생존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경험을 했다는 겁니다.
그럼 더 깊게 들어가 보죠.
'경험을 한다.'는 게 뭐예요?
그래요, 아까 그 얘기.
어떤 친구가 여행을 갔어요.
이탈리아, 유럽 여행 갔다고 해 보죠.
이탈리아를 경험한다는 게 뭐죠?
단순하죠. 눈앞에 있는 걸 눈으로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듣고. 오감이라고 하죠?
오감으로 뭔가 느끼는 거, 그걸 경험한다고 하죠.
오감만 있는 게 아니라 두뇌도 쓰죠.
두뇌에 있는 지적 능력. 어떤 걸 보고 이해하고.
이탈리아에 가서 그림을 보고, 큐레이팅을 들으면서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또 느끼고.
감정도 있죠.
그 오감과 이해 끝에 어떤 감정이 폭발하기도 하고.
이런 오감으로, 두뇌로, 온몸으로 뭔가 느끼는 걸 '경험을 한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경험을 한다.'의 또 다른 말.
그런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려면 써야죠.
무슨 얘기냐?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물론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내가 주위를 집중해서 눈으로 봐야 하겠죠.
코를 집중해서 냄새를 맡고, 어쨌든 입을 써야죠.
벌려야겠죠.
일단 복잡하니까 오감으로만 좁힐게요.
오감을 쓰는 것.
그래서 내가 쓴 오감으로 뭔가가 느껴지는 것.
그것을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그 오감이 모이는 곳이 어디입니까?
그리고 그 오감의 출발점, 그 모든 것들.
사실은 정확하게 생물학적으로는 '뇌'겠죠.
근데 뇌라는 건 좀 와닿지가 않아요.
왜냐면 어떤 감정도 생기잖아요.
물론 뇌도 감정입니다.
그러나 뭔가 어울리지 않아서 제가 더 직관적으로 와닿는 단어로 설명해 드릴게요.
경험을 한다는 건 뭔지 아세요?
바로 이겁니다.
오감을 써서 그 오감이 모이는 마음에, 그 그릇에 담는 겁니다.
또는, 나의 모든 오감과 두뇌 능력을 쓰는 겁니다.
그 오감과 모든 두뇌 능력의 총체를 마음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게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걸 제가 왜 보여드렸는지 아세요?
중요한 얘기, 앞의 그림과 이제 결합해 보죠.
자, 이겁니다.
공허감의 그림이었죠. 일단 마음부터 한번 가 보죠.
치열하지 않다고 그랬죠.
방금 제가 설명한 거로 말하면 뭡니까?
내 오감과 내 모든 능력을 쓰지 않은 겁니다.
물론 봤지만, 그래서 제가 마음이란 표현을 쓴 거예요.
진짜 내 모든 것들을,
핸드폰 내려놓고, 내 눈을 크게 뜨고, 모든 감각에 집중해서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 성당에 몰입해서 본 게 아니라
옆에서 '봐봐, 이 성당 진짜 멋있지 않아?' '봤어, 봤어.' 이건 보는 게 아니죠.
예를 들면, 이탈리아 여행을 갔어요.
그런데 뭡니까?
눈앞에 엄청난 성당이 있는데, 그 와중에도 또 핸드폰을 보면서
인스타에 업데이트된 걸 보면서 대충대충 본 거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거야.
어떻습니까?
이탈리아를 온몸으로 마음에 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마음에 담지 않았죠.
뭔가 찝찝해요.
왜 그런지 아세요?
그 이탈리아에 남겨둔 경험이 있는 겁니다.
대충 본 성당, 대충 먹다 만 음식. 그런 것들이 남아 있는 거죠.
저게 남겨둔 경험이죠.
그런데 왜 경험 얘기를 했다고요?
경험을 한다는 게 곧 뭐랑 같다고요?
인생을 산다와 같죠.
결국 뭡니까?
인생을 낭비하게 된 거죠.
실제로 그럴 때 있죠. 여러분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봐요.
요새 어떻습니까?
집에서 드라마 볼 때 온전히 드라마에 몰입해서 보는 경우 있습니까?
치열하게 전념, 몰두해서 마음을 다한 경우 있어요?
대부분은 핸드폰 보면서 보죠.
그래서 어때요?
'어우, 나 뭐 봤는지 모르겠다.' '드라마 다시 봐야지.'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일단 다시 본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시간 낭비죠.
그런데 다시 못 갈 때도 있어요.
그럼 그 인생은, 내가 어떤 이유로 두 번 다시 여행을 못 가는 거예요.
그래서 안타까울 때가 있죠.
그런 말 있잖아요.
항상 드라마나 영화 보면 '내가 그때 왜' '눈앞에 있는 친구랑 몰두해서 얘기하지 않았지?'
친구가 다음날 사고로 죽어 버린 거야.
안타까운 마음도 있지만, 뭐였어요?
'그때 친구가 눈물 글썽이면서 나한테 했던 말이 뭐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경우도 있어요.
다시 이탈리아로 갈 수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럼 그 경험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못 들어오고 하지 못하고 거기에 남아있는 거예요.
그건 어떻게 회복할 수가 없어요.
시간 낭비가 아니라 경험 낭비도 있는 거예요.
그 이유는 뭐라고요?
여러분이 온 마음을 다해 내 모든 오감과 능력을 다해서 쏟아붓지 않았기 때문에 다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서 느껴진 공허감이, 결국 다른 말로 바꾸면 인생 낭비감이 되는 거고요.
자, 이제 가장 깊은 심연 인생 낭비한 거, 왜 불행할까요?
보통 여기서 끝내죠.
'낭비는 아깝잖아요. 시간 아깝잖아요.'
더 깊게 들어가 볼게요.
왜 우리는 경험과 인생을 낭비하면 불행할까요?
낭비 좀 할 수도 있잖아요.
낭비하면 어때요?
이것까지도 왜를 붙여 볼게요.
이게 심연의 끝입니다.
그 가장 밑에는, 이렇게 말할게요.
아주 근본적인 인간의 감각 하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근본 중의 근본, 가장 심연에 있는 감각입니다.
생물학적으로, 고등 동물적으로, 심지어 영적으로 모든 것들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인간의 근본 감각.
저기 쓰여 있죠, 잘 보세요. 인생 유한성 DNA라는 겁니다.
사실 DNA라는 건 학문적으로 정확하게는 맞지 않지만 그
만큼 가장 밑바닥이란 걸 표현하고 싶어서 저렇게 표현한 거예요.
인간의 인생은 유한합니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정해놓고 태어났어요.
모든 생물의 한계죠.
그래서 항상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의식하든, 무의식적이든 신경 쓰고 있어요.
왜냐면 언젠가 이 모든 건 끝날 거니까.
인간은 이런 것들을 극복하려고 별짓을 다 하죠.
생물학적인 것부터 말씀드릴까요?
그래서 종족 번식이란 걸 하는 거죠.
왜?
나는 죽지만 내 유전자를 가진 나의 복제물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보면 생물학적 의미의 영생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번식이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이라고 하는 거죠.
또는 영적으로 승화하기도 합니다.
종교적인 것, 영생을 얘기하는 종교들이 있죠.
'이번 현생이 끝이 아니야.' '다음 생이 있고, 그다음 생이 있어.'
심지어, '영원한 생이 있어. 너도 신처럼 될 수 있어.' '신의 옆에 앉을 수 있어.'
그러면서 뭡니까? 유한한 인생을 늘리려고 하죠.
그러니까 번식이나 영생 같은 건 유한한 인생을 늘리려는 시도인 거죠.
그런데 이 시도 말고, 다른 시도가 있어요.
만약 이 시도가 무의미하다고 생각되고 정말로 딱 정해진 인생만 있다고 했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큰 시도는 뭡니까?
이 인생을 최대한으로 사는 거죠.
100만 원이 있어요.
늘리고 싶겠죠.
근데 못 늘리고, 딱 100만 원이 한계라고 했을 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
100만 원을 정말 1원도 낭비 안 하고 쓰고 싶어져.
낭비라는 말, 또 나왔죠?
누가 천 원, 만 원을 뺏어가거나 내가 썼더라도 가성비 이상한 데 투자해서 낭비하면 너무 아깝다고 하죠.
인생으로 얘기해 보자고요.
낭비되면 아까운 거죠.
이게 바로 인간의 유한성 DNA인 거예요.
공허감이 들었어요?
왜 불쾌한지 아세요?
심연으로 내려가 보면 그건 인생을 낭비한 겁니다.
공허감이 느껴졌다는 건 경험을 다 가져오지 않은 것이고
경험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건 인생은 경험 단위니까
결국 인생을 낭비했다는 거고 인생을 낭비했다는 건 저 밑바닥에 있는 인간의 DNA,
'내 인생은 유한하고, 정말 하나도 낭비하면 안 되는데' '낭비했구나.'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이 장대한 스토리가 뭔지 아세요?
여러분이 드는 그 공허감 있잖아요? 그게 찝찝한 이유인 거예요.
어떤 분이 불행의 몸부림치고 있어요?
불행에 몸부림치는 이유예요.
아직 못 느꼈지만 그냥 관심이 있어서 왔어요? 그 이유인 거예요.
가장 밑바닥에는 이 감각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근원에 있는 감각이 공허감이면 이것은 인생 전체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잘 와닿지 않으시죠?
제가 인생 낭비라고 했을 때 어떤 분은 찝찝해요.
어떤 분은 되게 불행해요.
어떤 분은 그냥 관심 정도예요.
이것도, 왜 다른지도 제가 지금부터 해석해 드릴게요.
인생은 경험 단위라고 했는데요.
그건 여러분이 오늘 처음 들으신 얘기고 시간 단위에 익숙하니까
저기 있는 동그라미들을 그냥 이렇게 말해 볼게요.
하루.
일단 볼게요.
첫날, 월요일이라고 해 볼게요.
일터에 가서 모든 일에 치열하지 않아서 다 가져오지 않았어요.
남겨둔 일, 남겨둔 경험, 낭비된 인생이죠.
화요일 날, 아침에 운동하러 갔어요.
근데 운동하면서 핸드폰 보느라고 운동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핸드폰을 제대로 본 것도 아니야.
남겨둔 운동, 남겨둔 인생.
수요일 날, 친구 만났는데 친구에 집중하지 않았어.
목요일 날, 영어 회화 학원에 갔는데 학원에서 제대로 치열하게 하지 않았어.
전부 다 남겨둔 인생.
월, 화, 수, 목, 이렇게 쌓여 가죠.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드세요?
'월, 화, 수, 목을 저렇게 지내면' '토요일, 일요일 날쯤엔' '인생 너무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 거 같은데요?'
라고 느끼시는 분이 있는 반면에,
'별로 와닿지 않는데? 며칠 정도는 뭐...' 이게 중요한 겁니다.
아까 제가 근본에는 인간의 유한성 DNA가 있다고 했죠.
그래서 공허감이란 건 근원적인 공포감일 수 있는데
이게 사람마다 아까움의 감도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아까 했던 100만 원 비유로 할까요?
'에이, 1원 정도는 뭐.'
1원도 낭비하면 안 되는 사람이 있고 한 50만 원쯤 날아가야 '아깝네.' 이런 사람도 있죠.
부자라서가 아니라, 100만 원으로 정해져 있다고 해도요.
이거는 지금까지 키워온 어떤 가치관의 축적, 경험의 축적 때문에 사람마다 달라요.
'전 공허라는 단어 때문에 지금 너무 불행하고' '몸부림치고 있어요.'
어떤 분인지 아세요?
아까워하는 단위가 짧은 분인 겁니다.
하루만 낭비해도 찝찝한 분이야.
이런 분들은 매일 밤 공허감이 찾아와요.
매일 밤이 아니고, 심지어 매 순간일 수도 있어요.
친구랑 만나고 집에 가는 길. 딱 2시간 만났는데 '뭔가 공허했는데?'
오늘 사용한 말로 바꿔 볼까요?
'나 뭔가 인생 낭비한 거 같은데.'
이런 사람들은 아주 단위가 짧은 거죠.
반면에 그냥 적당히 찝찝한 사람들은 단위가 큰 거예요.
한 하루 이틀쯤, 아니 한 일주일 정도.
치열하게 지내지 않아서 낭비해도 뭐... 그러다가 문득 일주일에 한 번?
아니, 심지어 저 동그라미가 한 달이라고 해 보죠.
한 달에 한 번? 이런 분들은 살짝 찝찝한 채로 남아 있지만 뭐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죠.
단위가 더 큰 사람도 있어요.
저 동그라미가 10년이라고 해 보죠.
10년 동안, 치열하게 지내지 않아도 문제의식이 없어요.
아까 제가 말했죠.
그냥 관심 정도만 있지 공허감에 대해서 한 번도 못 느낀 분들은 저 단위가 엄청 큰 거예요.
10년, 20년, 심지어 한 40년쯤 지나야 나이 드신 분들 중에 그런 분들이 있죠.
'내가 지금 70이야.'
'적당하게, 나름 부산스럽게 살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참 내 인생...’
‘공허하네.’
그런 분들은 단위가 큰 거죠.
그래서 제가 오히려 역설적인 얘기해 드릴게요.
하루만 공허해도 뭔가 불행하다고 일주일만 공허해도 불행하다고 몸부림치는 분들 있죠?
지금 현 상황은 괴롭겠지만, 그런 분들이 차라리 나아요.
'아니요, 둔감한 사람이 낫지 않아요?'
둔감한 사람은 뭐라고요?
30년 동안 그냥 놔뒀다가 나이가 들어서 돌아봤어요.
'내가 남겨두고 온 경험이 너무 많네.'
30년 동안 그게 누적되잖아요?
그 공허를 방치했잖아요?
그리고 3~40년 만에 돌아오는 거대한 불행감.
그걸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인간의 가장 큰 최대 불행감 중의 하나인 바로 이거죠.
후회와 미련이죠.
방치된 공허의 대 복수입니다.
하루, 일주일 만에 공허함을 느꼈으면 얼른 커버할 수 있죠.
근데 이미 3~40년이 지났어요.
아까 제가 비유한 70세 노인이라고 해 볼게요.
어떻게 할 겁니까?
인생을 되돌릴 수 있습니까?
인생의 유한성과 함께 또 다른 인간의 한계는 뭡니까?
우리가 유한성에 그렇게 몸부림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뭡니까?
되돌아갈 수 없어요.
다시 태어날 수 없어요.
끝난 겁니다.
그럼 그 남은 인생 동안 과거를 보면서 얼마나 계속 후회와 미련을 반복하겠어요.
이건 정말 지옥 같은 고통이죠.
그래서 차라리 감도가 낮은, 하루만 공허해도 아깝다고 느끼는 사람.
그 사람은 빨리빨리 메꿀 수가 있는 거죠.
그리고 왜 우리가 수많은 철학적 문제 중에서 공허감을 이 시대의 주제로 잡았는지 아세요?
이걸 밑바닥까지 파 보니까 이걸 의식화하고 그 실체를 파 보니까
가장 밑바닥에는 인간의 DNA와 연결되는
그래서 가장 큰 공포감과 연결되고 가장 근원 감각이라는 건,
인생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이걸 놔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렇게 공허감을 주제로 정한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이 여기 오신 거예요.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요?
이미 아까 나왔었죠.
여러분이 공허한 이유는 뭐라고요?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뭔가에 치열하지 않아서입니다.
놀 때도 치열하게 일할 때도 치열하게 했어야 하는데 그 어느 것에도 치열하지 않아서.
어떨 때는 50%, 어떨 때는 8~90% 정도만.
100% 하지 않아서죠.
이렇게 단순하게 하지 말고 저 충만감에 대해서도 우리의 심연, 무의식을 파헤쳐 들어가 보죠.
똑같은 저 원리로 '인생을 산다.'라는 정의를 가지고 해 보죠.
충만감, 이번엔 어떻습니까?
마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마음이 왜 가득 차 있을까요?
내 온 오감과 능력을 총동원해서 눈앞에 있는 것들을 끌어왔던 거죠.
눈앞에 있는 게 뭡니까?
바로 어떤 경험을 한 거죠.
경험을 full로.
아까와 반대죠?
이탈리아에 갔어요.
정말 이탈리아를 full로 다 경험한 겁니다.
눈앞의 친구랑 대화를 해요.
그 친구의 고민, 그 친구의 가치관, 그 친구의 모든 것을 full로 다 경험한 거예요.
이건 거꾸로 말하면 뭘 의미합니까?
경험을 full로 한다는 건, 인생을 full로 살았다는 거죠.
왜 여러분들이 저렇게 치열을 극단으로 했던 과거의 어느 날 예를 들어 볼까요?
취업 준비를 하느라고, 아니면 입시 때. 진짜 미친 듯이 열심히 한 적 있죠?
일단 어땠습니까?
너무 몸이 힘들고, 머리도 힘들죠.
스트레스도 엄청나죠.
공부 재밌습니까? 재미 하나도 없어요.
근데 왜 자기 전에, 몸은 털려 있는데 입은 이렇게 웃었을까요?
그때 있잖아요, 심지어 시험에 떨어졌을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1년 동안 미친 듯이 공부했는데 떨어진 적도 있어.
떨어진 그날은 되게 슬프죠.
아니 일주일, 한 달 슬프죠.
근데 다 지나서, 몇 년 지나서 딱 보잖아요.
왜 그때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을까요?
그것도 뭔지 아세요?
아까 말씀드린 것의 거꾸로죠, 이제.
인생 유한성 DNA가 이번에는 공포가 아니라 만족감으로 연결이 돼 버리는 거죠.
내 100만 원, 완벽하게 쓴 겁니다.
낭비 하나도 없는 겁니다.
몸은 털려 있고, 시험도 떨어졌는데 그때 웃으면서 들었던 그 생각 그 느낌은 뭔지 아세요?
'정말 나는 인생을 full로 살았구나.'
그런 인간은 흔치 않아요. 그렇게 산 겁니다.
와닿지 않으세요?
얘기 나온 김에, 예전에 제가 이걸 어디서 얘기했더니 달렸던 댓글을 제가 캡처해 온 거예요.
신입 사원이었던 거예요.
더럽게 힘들었대요.
지금 보면, 온통 고통의 기록이죠.
근데 뭐라고 되어 있죠?
'지금 훨씬 생활이 윤택해져 있고' '모든 게 다 안정되어 있지만' '왜 그때만 한 감각은 못 느낄까요?' 이런 표현을 씁니다.
'살아있었다.' 여러분이 많이 느꼈던 감각이죠?
'저 그때 있잖아요.'
'진짜 너무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지금은 내 일부가 죽어 있는 것 같고'
'그때는 살아있었다.'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인생을 하나도 낭비하지 않고 아주 야금야금, full로 살았거든요.
이게 살아있다는 겁니다.
제가 아까 마음을 얘기했었죠?
온 마음을 다한다는 건 뭔지 아세요?
그냥 더 감각적으로 표현해 드릴까요?
마음이 꽉 차려면 어때야 하죠?
내 모든 오감과 능력을 다 써야겠죠.
진짜 말 그대로 살아있다는 감각, 무슨 얘기냐?
여러분이 운동하러 갔어요.
그런데 진짜로 치열하게 몰두하면 즉각적으로 느껴지죠.
안 쓰던 근육까지도 느껴지면서 진짜로 모든 근육을 한 번씩 쓴 느낌.
반면에 대충 운동하거나 아니면 아까 말한 것처럼
눈으로 보긴 보지만 이거 봤다, 저거 봤다 하면 어때요?
진짜로 어떤 내 눈으로 모든 걸 느끼는 그런 생명력은 못 느끼는 거죠.
온 마음을 다 하잖아요?
진짜 내 모든 세포를 다 쏟는다.
쏟으면서 느끼는 살아있다는 감각, 그리고 쏟았으니까 투자하면 오감은 그 통로로 또 들어와요.
그러면서 뭔가 내 세포가 살아있는 감각, 하지만 궁극으로는 뭡니까?
그래서 마음이 꽉 찼다는 건 뭐예요?
눈앞에 있는 경험을 하나도 안 빼놓고 왔다는 감각.
논리적, 이성적으로는 눈앞에 있는 경험을 하나도 낭비하지 않았다는 살아있다는 감각.
몸으로는 뭡니까?
그걸 하기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하고 온 마음을 느꼈을 때 살아있는 그 감각.
이것들이 겹쳐지면서 무슨 말이 튀어나오는 거예요?
'살아 있었다.'라는 거예요.
거꾸로 지금은 윤택하죠.
그런데 왜 그때만 한 감각이 없을까요?
훨씬 더 잘 살고 있겠죠.
신입사원이 아니니까.
일도 편하겠죠.
부장 정도 되셨겠죠.
근데 왜?
치열하지 않으니까요.
100% 마음을 다하지 않으니까요.
내 몸의 감각 중에 일부는 항상 죽어 있는 거고 집으로 가면서,
자기 전에, '왜 이렇게 공허하지?'
일터에 남겨둔, 제대로 쉬지도 않고 제대로 일하지도 않고 남겨둔 경험,
남겨둔 인생이 나의 밑바닥에 있는 인생 유한성 DNA를 자극하는 거죠.
우리가 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인생 전체로 확대할 수 있으면요,
아까 공허라는 감각이 방치돼서 인생 전체로 확대되면
어마어마한 후회와 미련의 인생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로 끝나 버리죠.
하지만 반대에 있는 우리가 지나가듯 한 번 느꼈던,
과거에 하루 느꼈던,
한 순간 느꼈던 그 살아있던 감각을 반대로,
공허가 인생 전체에 퍼지듯이 이 근본 감각을 전체에 퍼뜨릴 수 있다면 어떤 삶이 될까요?
반대로 이 그림을 생각해 보세요.
매일 살아있는 감각을 느꼈다고 생각해 보세요.
매일 쏟아붓고 '어휴, 어떻게 그렇게 힘들게 삽니까?' 아니요.
일이라고만 하지 않았어요.
일과 공부는 그냥 여러분에게 와닿는 비유라서 그렇지 여러분 쉬는 것도 쏟아붓고 쉬어야 한다고요.
완전히 내려놓는 거 있죠.
모든 세포로 비어 있음을 느끼는 거 있죠.
그것도 치열한 거예요.
그것도 휴식에 몰두하는 거예요.
특히 현대인들은 그놈의 멀티태스킹, 그놈의 핸드폰 때문에 한 번도 몰두한 경험이 없죠?
만약 진짜로 매일매일 몰두해서 온몸의 세포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휴식도 정말 충만하게 해서
정말 아까운 휴식,
내가 저기 호텔에 남겨놓은 호캉스 때 남겨 놓은 뭔가 찝찝한 휴식 없이
매일매일 꽉 차게 일하고, 놀고, 쉬고, 그러면서 살아있다는 감각.
내 오감과 세포가 살아있다는 감각.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이 유한한 인생을 하나도 낭비하지 않고 있다는 감각.
그래서 마지막에 죽을 때,
예시의 70대 노인처럼 '나 이제 어떡하니? 내 인생은 후회와 미련만 남았다.'가 아니라
죽을 때 비석이 이렇게 쓰여있는 거예요.
'여기, 인생을 full로 산 사람 잠들다.'
끝내주지 않아요?
제 인생 묘비, 목표 중의 하나예요.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해준 선물을 완벽하게,
하나도 낭비 없이 신의 뜻대로 다 full로 이용한 한 사람이 여기 잠들어 있다.
이것은, 이렇게 말할게요.
감히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이것은 최고치 인간입니다.
제가 왜 공허감, 충만감을 밑바닥까지 팠느냐?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
밑바닥까지 파고 내려갔더니 이것은 아주 인간의 근본 감각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맞닿아 있는 근본 감각은 인생 전체로 확대되게 되어있어요.
내가 신경을 안 쓰더라도.
그런데 공허감을 그냥 방치하면 너무 안 좋은 시나리오로 빠질 거고요.
우울한 얘기가 아니라 그걸 역이용해서 공허감의 반대에 있는
여러분이 지나가듯이 느껴왔던
특히 여기 오신 분들은 제가 말하는 충만감의 그 만족감이 뭔지 한번 경험해 보셨을 거예요.
공허감에 찝찝하고 불행한 만큼 반대의 감각도 느꼈다면
그 만족감이 뭔지 경험하셨을 거예요.
그걸 인생 전체로 확대할 수 있다면 이런 인간은 없는 겁니다.
친구를 만나요.
카페에 갔어요.
카페가 목적이에요?
그러면 그 카페의 모든 것을 흡수하려고 아예 귀 막고 '친구야, 잠깐 얘기 좀 하지 말아봐.'
그 카페의 어떤 향, 디자인, 인테리어 눈앞의 음료,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섭취했다고 해 봐요.
그리고 끝나고 나서 친구랑 대화를 해요.
그 친구의 가치관, 고민 그 모든 것들을 얘기했다고 해 봐요.
집으로 왔어요.
당연히 에너지가 빠졌겠죠.
근데 쉬는 것도 뭐?
핸드폰 내려놓고 완전히 집에 불 꺼 놓고 명상하듯이 쉬어요.
완전히 온 마음과 머리와 몸을 비어있음으로 꽉 채웠다고 해 봐요.
근데 그것이 하루가 아니고, 이틀이 아니고, 사흘이라고 생각해 봐요.
매일매일 그 알 수 없었던 만족감
제가 오늘 알 수 없었던 만족감을 의식화해 드렸죠?
인생을 full로 사는, 100%로 사는 max로 사는 그 만족감을 매일매일 느낀다고 한번 해 볼게요.
이것은 인생의 엄청난 큰 변화입니다.
공허감의 실체에 대해서 관심 있어서 오셨겠지만
그 밑에 있는 공포의 길이 아니라 감히 그 정반대에 있는 충만한 길을 제안하는 바예요.
그리고 특히 여러분께 제안하는 바가 있어요.
여기 오신 분들은 아까 제가 앞에 말씀드렸죠.
공허감에 대해서 나름 민감하신 분들일 겁니다.
여러분은 충만감의 가능성에 대해서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실 거예요.
여러분들은 충분히 이 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삶으로 나아가실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분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감히 제안하는 바예요.
저 삶으로 가는 방법은 뭘까요?
이미 앞에서 나왔어요.
이거예요.
그냥 이겁니다.
여러분, 이것만 하시면 돼요.
앞으로 여러분의 삶은 제가 방금 묘사해 드린 대로입니다.
이런 강연에 와서도 몰두해서 정말 모든 걸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가져가시고 끝나고 쉴 때에도, 친구 만날 때도 그래요.
여러분들은 진정한 워라밸인이 되는 겁니다.
제가 몇 번 말씀드렸는데요.
저는 워라밸이라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워라밸이 나쁘다, 이런 문제의식은 단순해요.
이것도 공허/충만으로 볼까요?
일과 삶이 나눠지고 밸런싱을 갖는 건 상당히 좋은 일일 수 있어요.
누군가는 '일, 일, 일'이 좋다, 누구는 '삶, 삶, 삶'이 좋다.
그게 무의미하고요.
제가 핵심으로 삼는 건 뭔지 아세요?
진정한 워라밸은 '일할 때 팍, 쉴 때 팍'인 겁니다.
그런데 일터에 가서는 이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야.
학교에 가서 이건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야.
집에 와서는, 아까 말했잖아요.
이건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유튜브를 보는 것도 아니고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들 여기 콘서트장에 오셨죠.
당연한 얘기지만 핸드폰 이용 자제해 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옆 사람에게 방해되는 것도 있지만 이런데 왔으면 좀 몰두하고 몰입하라는 거예요.
근데 제가 요새 영화관에 갔더니 너무 놀라운 거야.
특히 젊은 세대들은 완전히 멀티태스킹과 핸드폰에 중독된 젊은 세대들은
그 껌껌한 영화관에서도
그 주의 사항을 옆에 사람한테 민폐 끼치면 절대 안 된다는 게
정말 문화가 될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 10대, 20대인데도
핸드폰을 주기적으로 보는 겁니다.
왜 보는지 아세요?
무례한 게 아니에요. 못 견디는 거예요.
그게 무슨 라이프입니까?
'제가 일하고 공부하다 너무 힘들어서, 밸런싱을 맞춰야죠.' 좋아요.
'저는 그래서 끝나고 영화관 갈 거예요.'
'조기 퇴근할 거예요.'
'우리 회사, 더 일찍 퇴근시켜 주세요.'
좋아요.
갔으면 영화를 봐야죠.
그렇다고 막상 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하느냐?
'열심히, 성실히 하라.'라는 말이 아닌 거 아시죠?
진짜로 모든 걸 쏟아부어서
그 스트레스와 그것까지도 진짜 다 완전히 경험하느냐, 그것도 아니에요.
여러분은 반대가 될 거예요.
진정한 워라밸인이 되실 거에요.
어떻게요?
일하거나 공부할 때는 진짜 확실하게.
그리고 끝나고 쉴 때나 놀 때는 또 확실하게.
이게 치열, 충만한 라이프입니다.
그러면서 뭡니까?
매일매일 만족한 웃음, 매일매일 살아있다는 감각.
옆에서 보잖아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정말 생기가 넘쳐납니다.
제가 오늘 계속할 얘긴 데요.
여러분 제가 생각하는 최고치의 인간상은 누군지 아세요?
청춘? 아니요.
아이들입니다.
걔네 보면 항상 어때요?
다 쏟아붓죠.
나이가 들어서 가장 아쉬운 게 뭔지 아세요?
뭔가 생각이 많아지고 뭔가 힘을 빼요.
그래서 뭔가에 몰두하거나 쏟아붓지 않죠.
아이와 청춘들을 보세요.
매일매일 생명력이 넘쳐나잖아요.
아니면 저를 보세요.
제가 오늘 강연 시작할 때 말씀드렸잖아요.
컨디션 진짜 안 좋아요.
제 눈빛을 보세요.
약간 미친 사람 같지 않아요?
왜 그런지 아세요?
저는 지금 다 쏟아붓고 있거든요.
진짜. 저 있잖아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몇 주 동안 진짜 치열했어요.
며칠 동안은 잠도 못 잤어요.
근데 어떤지 아세요?
웃고 있었어요 진짜.
여러분이 봤으면 미친 사람이라고 했어요.
눈빛이 살아있어요.
완전 몸이,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며칠을 못 잔 거야.
제가 이거 준비하면서 쓴 메모가 오늘 아침에 세어봤어요.
메모장에 쓴 컴퓨터 메모가 17,000줄이에요.
17,000줄을 그냥 쓴 거예요.
그리고 종이에 볼펜으로 쓴 거 있죠.
그게 A4용지로 한 70장인 거예요.
얼마나 팔이 아팠겠습니까?
그리고 그걸 위해서 얼마나 머리가 터질 것 같았겠습니까?
근데 어땠는지 아세요?
눈이 완전 반짝이고 입은 이렇게 미소 짓는.
그걸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도 있었다니까요.
과거의, 아까 제가 다시 떠올려드렸던 그 충만감의 순간.
여러분이 매일매일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어떻게? 치열하면요.
어떻게? 치열하면요.
100% 쏟아붓고, 100% 느끼고 오늘 이거 끝나잖아요.
집에 가서 진짜 쉴 거예요.
떨려요, 얼마나 충만하게 쉴까.
아니면 술 한잔에 모든 내 감각을 다 맡겨서
이 술을 즐겨서 마음속에 있던 마지막 스트레스를 밀어내겠다.
아니면 음악을 들으러 가겠죠.
그래요, 음악도!
그렇게 해 본 적이 별로 없죠?
요즘은 어떤 세대입니까?
그냥 핸드폰으로 들으면서 다니는 세대죠.
이거 꼰대 같다는 얘기하지 마세요.
세대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음악은 이제 어떻습니까?
그냥 bgm이죠. 배경음악이죠.
여러분, 음악에 몰두해서 치열하게 들어본 적은 있으세요?
한 번만 들어보세요.
방에 불만 꺼놓고, 핸드폰으로 듣는 게 문제예요.
핸드폰을 일단 뒤집고, 멀리 떨어뜨려 놓으세요.
그다음 알람 다 끄세요.
그리고 정말 불을 꺼놓고 완전히 음악에만 집중해 보세요.
1번, 안 들리던 소리들 심지어 라이브 같은 거 하잖아요.
그럼 정말 악기 연주하는 사람의 손가락 짚는 소리, 숨소리, 복합적인 여러 가지 음악들, 가사의 의미들, 이런 것들이 들어오면서 정말 마음이 가득 차는 느낌이 들어요.
그게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다?
어떤 눈물, 아니 눈물 전에 그냥 이렇게 음악으로 가득 채워 봤다는 것만으로도 달라요.
그러고 나서 나오잖아요?
뭔가 개운한 느낌까지 들어요.
왜 그러는지 아세요?
마음속에 진짜 어설프게
인스타 조금,
일 생각 조금,
놀 생각 조금,
음악 조금이 차 있다가
온 마음이 음악으로 꽉 차니까 나머지가 다 빠져나간 거야.
그래서 음악만으로 가득 차서 충만하고 음악만 듣고 나왔는데 후련한 느낌.
이런 삶을 매일매일 살아가는 거예요.
뭐 하면? 치열하면.
이런 삶이 뭐라고요? 충만한 삶, 인간으로서의 최고치 삶이에요.
이렇게 살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사실 거예요.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부터 할 말, 이게 파트2입니다.
그렇게 멋진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날, 바로 내일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다음 달일 수도 있어요.
갑자기 방해물 하나가 찾아옵니다.
사실 이건 별거 아닌 겁니다.
우리 저 치열, 충만에 비하면 깜냥도 안 되는, 별것도 아닌 놈인데
이놈이 지금 과대평가, 뻥튀기가 돼서 나름 되게 크게 여러분을 방해할 거예요.
별 것도 아닌 놈이 우리의 멋진 삶을 방해할 거기 때문에
제가 지금부터 그 방해물을 박살 내드릴 거예요.
그 방해물의 이름은 바로 이겁니다.
여러분, 그냥 치열하시면 돼요.
아무 생각할 거 없어요.
충만도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치열하면 바로 느껴질 거예요.
충만은 느껴지는 거기 때문에 '충만해야겠다.'
이런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아무 생각 없이 'just 치열' 'just do 치열'이에요.
여러분을 방해하는 한 놈이 오겠죠.
바로 '목표'라는 놈입니다.
저거를 없애야 해요.
목표 없이 오직 순수한 치열로 가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