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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9일 ~ 12월 11일> 창작 보따리 (feat.내꿈은작가)

by Choose Me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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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196911031

<쓰르라미 울적에>

1.

빛바랜 사진을 꺼내놓고 그 모든 것이 빛이 바랬다.

새로찍은 사진을 꺼내놓고 그 모든 것이 빛이 반짝인다.

슬픈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장 소중하게 여긴 마음이 없어졌으니까.

우울한 기분에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장 중요하게 여긴 생각이 변했으니까.

독서와 글쓰기와 놀기를 좋아했던 아이는

공부와 운동과 취업을 해야하는 성인이 되었다.

아직 남아있는 한 줌의 빛바랜 기억은

취미로 취급하는 반짝이는 기억에 희미한 추억이 된다.

가장 의미깊은 생각과 마음은 이미 가치를 잃어버렸다.

가장 의미없는 생각과 마음은 나날이 가치를 높여간다.

세상은 빠르게 흘러가지만, 나의 생각과 마음은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어린 시절에 학원누나가 해준 밥을 먹고, 비 오는 날 교회에서 몰래 만화책을 읽던, 순수했던 첫사랑의 감정은,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오래된 역사다.

2.

하루를 돌아보고 부정하는 것은 맑은 샘물이 부숴진 것이다.

하늘을 올려보고 돌아보는 것은 샘물까지 이어진 오솔길이 없어진 것이다.

한숨을 부정하고 다시 고개 들어 보는 것은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흘러내리는 샘물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떨어지는 샘물은 손바닥 사이로 흘러간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이사이로 떨어지는 샘물이 멈추었다.

샘물이라고 부르지 못할만큼 작은 방울방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작은 손가락으로 긁어모은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작은 바가지로 퍼올린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작은 웅덩이에 담아둔다.

샘물이라고 부르지 못할만큼 탁한 방울방울이다.

<매미는>

1.

책상 앞에 앉아 선풍기를 튼다.

여름인데도 매미는 울지 않는다.

차갑게 서리낀 아이스바를 먹는다.

여름인데도 매미는 보이지 않는다.

방안에 더운 열기가 들어오면

커텐을 치고 아직 덥지않은 방바닥에 누워

여름을 기다린다.

가만히 방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모기는 날아가는데 매미는 날지 않는다.

아직 시원한 방바닥이 좋은가보다.

아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나보다.

2.

기분좋게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면

가끔씩은 기분이 찝찝할 때가 있다.

괜히 주위에 누가 있는지 둘러보고

아무도 없으면 소리한번 쳐본다.

이따금씩 밤에도 그럴 때가 있는데,

너무 더워서 잠에서 깰 때가 그렇다.

매미를 일찍 깨워서 그렇다.

선선한 날씨에 깨우면

가장 조용한 녀석이지 않을까.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197943804

<풀잎과 꽃>

1.

살아있는 꽃을 꺾어본 적 있는가.

파르르 떨려오는 꽃잎의 마지막 숨결을 느껴본 적 있는가.

꿀벌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뿌리깊은 곳에서부터 끊고

나비가 날아오지 못하도록 줄기마디를 조각내었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이파리의 눈물은

손끝에서 몸서리치게 서글피 울고 있고

정신이 아득해질만큼 매혹적인 향기는

손안에서 꿀벌과 나비들과 함께 짖밟혔다.

땅으로 처참히 떨어지는 순간에도

꽃은 포기하지 않듯이, 더욱 향기로운 내음으로 나를 유혹하였다.

마지막 꽃내음을 맡고, 깨끗한 눈물을 뭍히고, 손바닥을 탁탁 털고, 발바닥을 쿵쿵 울리며 떠나갔다.

2.

날카로운 풀잎의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나의 마음을 베기에는 충분한 울림이다.

ㅡㅡ절취선ㅡㅡ

꺼내보자.

개미와 배짱이가 승부를 하고 있다.

알아보자.

개미는 일을 하였고, 베짱이는 일을 하였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과 십자가를 찬양하는 삶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ㅡㅡ절취선ㅡㅡ

날카로운 풀잎의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나의 마음을 울리기엔 충분한 날카로움이다.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199080816

<초심을 찾아서>

1.

며칠간 앓아누웠다 다시 일어서려니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진행해온 일들이 진척되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잠깐 쉬어버리면 모든 것들이 도로 제자리를 찾아간다.

모든 것들은 귀소본능이 있다.

결국에는 처음 자리로 돌아가겠지만 그것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는 것이 노력이지 않을까.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을 보고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사람이 그러한 행위를 사람에게 행하면 비도덕적이다.

도덕적이란 결국 귀소본능을 거스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깔끔하게 정리된 공간은

나의 본능에 어긋난 공간이다.

다만 어지럽혀진 공간에 놓여진 책 한권은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모든 것들은 집에 돌아가야 한다.

2.

음악은 다시 흐르고 모든 죽은 것들이 다시 찾아온다.

시간은 잠시 멈춰지고 철 지난 기쁨이 다시 찾아온다.

주기적인 윤회는 깨닫지 못한 곳에서 반복되고

주기적으로 태어나는 생각은 반복적이지 않다.

마음 아픈 점은 온전한 느낌을 다시는 경험하지 못함이다.

감사한 이유는 온전한 실수를 경험하지 못함이다.

이제는 식어버린 믹스커피를 바라보며

뜨겁지 않게 '후' 불어 마신다.

이제는 쓰지않는 난로를 생각하며

꺼지지 않게 '후' 불어 넣는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일기장을 떠올리며

보이지 않게 '후' 불어 내쉰다.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00006791

<이미지>

1.

보슬보슬 비 내리는 하늘은 흐리다.

가끔 맑은 하늘에 여우비가 내리기도 하고,

하늘을 올려볼 때 마주한 비의 배경은 구름이다.

구름 위에는 태양이 밝게 빛나고

구름 밑에는 투명한 빛이 반짝인다.

촘촘히 맺혀있는 형상을 가까이서 본다면,

어느새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하얀빛 구름이 되기까지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2.

책상 위에 올려진 펜은 딱 맞게 올려져있다.

의자 위에 앉혀진 나는 딱 맞게 앉혀져있다.

펜을 휙 갈겨 노트를 그린다.

줄에 딱 맞게 글씨를 그린다.

줄지어 날아가는 새들의 행진

의지가 굳센 듯 입술을 꾹 닫고 있다.

펜을 휙 갈겨 그림을 적는다.

줄에 딱 맞게 생각을 적는다.

줄지어 떨어지는 깃털을 보아라.

의지가 굳센 듯 빛깔이 아름답다.

펜을 휙 갈겨 가사를 부른다.

줄에 딱 맞게 음악이 나온다.

줄지어 행진하는 새들의 비행

의지가 굳센 듯 날갯짓말고는 들리지 않는다.

책상 위에 올려진 펜을 휙 갈겨 자리를 지운다.

의자 위에 앉혀진 나는 휙 갈겨 자리를 비운다.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00678635

<신문>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면 새로이 견문을 쌓는다.

이전에 받았던 간행물은 옛 소문이 되고

정신차릴 틈도 없이 오늘일자의 신문(新聞)이 발행된다.

내가 가장 오래 보는 것은 글쓴이의 논설이다.

주관과 견해가 담긴 사설은 한편의 수필이다.

수많은 신문(訊問)을 통해 신문(神文)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문(新聞)은 신문(訊問)을 신문(申聞)하는 과정에 있어서

진실함과 정직함을 반영한 글이라 생각하고

신문(神文)은 신문(新聞)을 얼마나 많이 읽고 익혔는지가 반영된 삶의 정수라 생각한다.

신문(神文)은 깊이가 매우 깊어서 몇번을 읽어도 배울 점이 가득한 글이라 생각하고, 글의 길이와 문장체 등과 상관없이 어느 누가 읽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글이라 생각한다.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서 탄생한 신문(神文)만이 오늘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01444150

<녹>

1.

오래된 컨테이너 주변에는 이름모를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아버지보다 일찍 태어난 것 같은 녀석은

모진 비바람속에 코팅이 벗겨지고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간직한 손잡이와 안장이다.

기나긴 억겁의 시간 속에서

주인이 아껴준 흔적이 보이고 넘어진 상처가 보인다.

버림받은 세월 동안 초췌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친구는

가슴 깊은 곳까지 녹슬어 있었다.

이제 재활용 처리될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저 먼 곳으로 팔려간다.

2.

사진과 그림과 음악은

흘러가는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고

독서와 감상과 경청은

흘러가는 시간을 내 안에 가두는 방법이다.

한 가지 분야에 천착하여 몰두하는 태도는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고

여러 분야를 탐구하여 조금씩 담는 태도는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사회적 지위와 나이에 관계없이

진한 향수와 강한 조미료는

모두에게 좋아하는 것이고

진한 커피와 강한 담배는

하루를 버틸 힘을 허락해준다.

얕아지는 생각과 옅어지는 감정은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던

나를 사라지게 만드는 부정이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늦은 밤에 잠을 자는 습관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부적이다.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03503606

<감>

감은 떫은 맛도 있고 익으면 달달한 맛이 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떫은 맛이 기억에 남는다.

감이 처음가진 그 맛은 시간이 지나 달라지더라도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계속 떠오르는 것 같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기억될지 의문이 든다.

나의 처음을 알고 나의 지금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나의 못난 모습과 어색한 웃음을 기억하고 있을까.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꼭대기 위에 감은

지금도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힌다.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07682512

<비극>

1.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을 헤매다보면 저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가지고싶어 나도 모르게 올려다보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곤한다.

분명 저 별들은 그저 제자리에서 스스로 빛을 내고 있건만 나는 왜 저것들을 탐내는가.

어제와 같이 오늘 하루가 흘러갔지만 만족하지 못한 내 눈은 오늘도 사그라져간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부족한 내 마음은 그렇게 옹졸해져간다.

그제와 비슷한 내 생각은 깊이가 얕아지고 며칠 전 피웠던 담배만이 변하지 않는 내 습관이 되버렸다.

1달마다 들어오는 월급은 변하지않고 1년마다 돌아오는 신년계획은 항상 같은 목표이다.

저 별들처럼 나도 같은 위치에서 빛을 내고 있지만 왜 보이지 않는걸까.

점점 사라져가는 내 불빛은 어째서 아무도 봐주질 않는건가.

고개 숙여 항복하면 짧은 행복이 찾아오는 서글픈 내 드라마는 시청률 제로인 비극이다.

2.

어느덧 쌀쌀한 느낌이 사라지고 따뜻한 계절이 다가오는걸 깨달았다.

차가운 도서관 구석에 있기에는 따뜻한 길거리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세상은 젊음과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나는 아직 덜 익은 마음과 어린 생각 그리고 뜻하지않은 늙음이라는 부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에 저 솟아오르는 태양을 마주치면 무너져버릴거 같아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한다.

저 뜨거운 열기에 편승해 함께 떠나고 싶은 마음도 같이 떠나가고 계절이 바뀔때마다 다시 글을 적는 나도 같이 바뀌어간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여름과 겨울이지만 설레는 감정은 뜨거움과 차가움의 괴리감만큼 내게서 멀어져가고 깊은 파도에 떠밀려간 나의 추억은 얼어붙으며 기억하지 않는다.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떨어졌던 가을의 낙엽은 봄의 새싹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는걸 알았을까.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08791773

<돌>

옆으로 누운 돌과 뒤로 엎어져있는 돌은 같다.

시간을 거쳐 작아진 돌은 큰 바위와 같고

큰 바위는 산과 같다.

모래알갱이 하나하나가 여기에 있고

이곳에 기웃거리는 새들은 둥지를 튼다.

아침에 일어난 강아지는 땅을 밟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나에게 비상사태는 기상할 때 부숴지는 돌맹이와 흩어지는 흙바람이다.

앞으로 굴러가는 돌덩어리는 강으로 떨어지고

자갈속에 숨은 가재는 점점 사라져간다.

저녁노을이 담긴 호수는 점점 깊어지고

노을빛을 한가득 담은 바다를 바라보는 하늘은 점점 흐려진다.

앞으로 굴러가는 돌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강철과 함께 태어난

조각된 작품 밑에 자고 있는 작아진 돌은

더이상 굴러가지 않는다.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10784897

<마음>

정갈하게 정리된 옷장을 바라보면 어지럽히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세수와 면도 후 바라보는 거울을 깨트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참을 수 없을만큼 화가 날 때면 표할 길이 없는 마음이 있다.

정밀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물건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정해진 시간을 벗어나 생각들이 어지러울만큼 떠오를 때

잡다한 일은 찾아서 그저 다른 이유를 만들어 가라앉힌다.

산만하게 펼쳐진 빨랫감을 정리하고픈 마음이 있다.

더렵혀진 유리를 깨끗하게 닦아주고픈 마음이 있다.

터질듯한 분노를 데리고 이리저리 돌보는 마음이 있다.

엄성하게 엮어진 인간관계를 생각할 때

생각치못한 사건으로 불행을 늦추게 되었을 때

사소한 이유를 찾아서 그저 같은 이유로 가라앉힌다.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20554641

<오전 9시>

1.

수 많은 사람들을 지나쳐가고 헤아릴수도 없을 만큼 숨을 들이마시며 내뱉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곳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며 살아왔던 것일까. 많은 것들을 보고 들으며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침체되어가는 내 몸을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잠들지 못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마지막까지 답하지 못할 질문들은 모두 개인의 쾌락으로 잊혀질 뿐이다. 어느 날, 도로 위에 뿌리내린 풀 한 포기에게 나비가 날아온다. 작디작은 나비의 날개짓에 풀은 희미하게 바람에 흔들리는 듯 하였다. 자동차에 짓눌려 고개조차 들 수 없는 풀에게 나비는 기꺼이 그 길을 따라 나섰다. 나비의 시체와 풀의 고요한 모습은 나를 미치게 하였다. 아름답던 그 생명의 항연은 아포리즘따위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내게 선택하지 않은 우연은 아무것도 아니며 선택할 때 비로소 인연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얼마나 후회했는가. 지금도 희미하게 떨려오는 작은 날개짓과 풀의 작은 몸짓은 그들만의 세레나데가 아닌가.

2.

가시박힌 장미꽃은 아프디아픈 아름다움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아프디아픈 가시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얽히고얽힌 가시속의 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고여린 장미꽃의 마음이 보인다.

3.

붉디붉은 장미꽃의 향기를 맡고 있는가.

아리따운 외면에 감춰진 향기를 맡고 있는가.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30061237

<여백>

여백을 남기는 것은 결코 공백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공책에 빈 공간이 있는 건 글을 적고 지울 수 있기 위해서이다.

코와 입이 뚫려있는 이유는 숨을 들이마쉰 뒤 내보내기 위해서이리라.

결코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오랫동안 채워져 있지도, 비워져 있지도 않은 공간. 여백이다.

그렇기에 하루는 일주일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아무리 아프더라도 나을 수 있는 것이리라.

항상 비우고 채웠지만 틈 사이의 여백은 그렇게 남아 있다.

무의식의 발견자 프로이트는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무의식속에 남아있는 과거가 현재를 바꿀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여백에 과거를 채울 만큼 우리는 여유롭지 않다.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 순간만을 위한 여백이 하루분량으로 주어진다.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도 하지말자.

그리고 그것의 여백을 다시 바라보라.

찰나의 순간은 고정관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름>

장미꽃은 장미향이 난다.

그런데, '장미'란 이름이 없더라도 '장미'향이 날 수 있을까?

우린 늘 이름을 붙이곤 한다.

심지어 자기자신에게도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름은 원래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끔 해 준다.

그러나 때론 본래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장미'는 그 이름이 없어도 향이 난다.

누군가가 억지로 만지지 않더라도 아픈 가시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예쁜 꽃잎을 가지고 있고 임의로 기르지 않아도 스스로 자란다.

자신의 '이름'이 누군가에게 불리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존재는 불변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하자.

가금 무시당하고 억울하더라도 그대라는 사람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이 갖는 의미는 대상이 없다면 결코 혼자서 설 수 없다.

'성공'이란 허무란 이름을 갖고자 하는 이 세상.

과연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85942873

<위험>

깜빡 불이 켜지는 비상등을 보고 밖으로 뛰어간다.

단단한 건물이 무너지는 풍경속에서

깜빡 놓고 간 물건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튼튼한 가구에 금이 간 것을 보면서

깜빡이는 정신을 부여잡고 밖으로 뛰어간다.

뿌연 흙먼지가 눈 앞을 가리고, 매캐한 연기가 숨통을 조인다.

시원한 여름바다는 눈 앞에서 잠기고

따뜻한 난로는 눈 앞에서 불타오른다.

이따금씩 떠오르는 캄캄한 추억속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이란,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은 참 밝다는 것이다.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86028950

<양심을 팔지언정, 밥그릇을 팔진마라>

1.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고양이 하나가 내게 다가온다.

몸은 바짝 말라있고, 눈은 뜨질 못한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다리에 몸을 비비곤, 그대로 누워앉는다.

나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곤, 그대로 떠나길 바라면서 차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바라본다.

삶의 마지막 순간마다 전해지는 애통의 몸짓은, 희뿌연 담배연기처럼 떠나간다.

원래 고양이체질이 아닌지라, 다가오는 고양이들을 이렇게 물리치곤 한다.

내게 다가오는 건, 상처받고 버림받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문둔병걸린 고양이다.

담배냄새를 싫어한다고 알고 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담배냄새마저 느끼지 못하는가보다.

거리에 널려있는 빈 밥그릇을 보며, 쓰레기통을 열심히 찾아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먹다 남은 찌꺼기를 쓰레기통 옆에 올려둔다.

내가 바라보는 건 희망도, 사랑도, 꿈도 아닌, 현실이다.

2.

잠에서 깨어나 옥상에 걸터앉아 긴 한숨을 내쉬곤한다.

어제 하기로 한 일이 잘 되지 않을때마다 한숨을 푹 쉬곤한다.

한참을 서성이던 녀석이 주위를 맴돈다.

나는 늘 그렇듯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곤, 어서 떠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긴 한숨을 내뱉는다.

가끔씩 이렇게 찾아오는 벌과 나비들을 내쫓고나면 서둘러 자리를 비운다.

한숨을 내쉬는 이들은 나말고도 여럿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굴을 푹 숙이곤 모르는 척 지나간다.

내가 가진 한숨을 이들과 공유할 순 없는 법이다.

내가 가진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순 없는 법이다.

내가 가진 밥그릇을 내어줄 순 없는 법이다.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87104939

<삼색볼펜>

1.

바다로 나가 그물을 펼쳐본다.

손에 잡히는 건 마른멸치와 거울 속 비친 야자수다.

뜨거운 태양을 피하는 나의 손짓은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있고

비릿한 내음을 피하는 나의 손짓은 흐르는 숨을 골라내고 있다.

오래된 항해일지를 나아가는 아름다운 인어의 모습이란

오래된 바다표면을 훑으며 지나가는 삼색의 모습이다.

2.

고향길을 떠나 먼 타지로 향하는 길위에 주저앉고서 흑백의 노트를 열어본다.

타지에서 먼 고향길을 열어보며, 삼색볼펜을 꺼내어 목소리를 그려본다.

'니 얼굴에 상처 뭐고?'

'이거 면도하다 생긴 상처다.'

고향길을 떠나 먼 타지로 향하는 길위에 주저앉고서 삼색의 노트를 열어본다.

타지에서 먼 고향길을 생각하며, 흑백을 꺼내 사색을 적어본다.

'잠에서 깨어난 나를 바라보는 나는 잠에 빠져든다.'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87681150

<A,B,C>

1.

두려운 마음을 간직한 채, 첫 번째 상자를 열어본다.

A가 말하고자 하는 건, 첫 번째 상자는 꽝이라는 것이다.

두려운 마음을 간직한 채, 두 번째 상자를 열어본다.

A가 말하고자 하는 건, 첫 번째 상자는 꽝이라는 것이다.

두려운 마음을 간직한 채, 세 번째 상자를 열어본다.

A가 말하고자 하는 건, 첫 번째 상자는 꽝이라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결과를 간직한 채, A를 열어본다.

A가 말하고자 하는 건, 첫 번째 상자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

두려움을 느낄때마다, 상자를 만들어본다.

빈 상자안에 A를 담고, B를 담고, C를 담는다.

B가 말하고자 하는 건, 두 번째 상자안에 넣어달라는 것이다.

C가 말하고자 하는 건, 세 번째 상자안에 넣어달라는 것이다.

매우 화가 난 나는 A,B,C를 한 곳에 담아둔다.

3.

퇴근길을 가다보면, 야생 고라니가 튀어나오곤 한다.

A가 말하고자 하는 건, 첫 번째 상자는 꽝이라는 것이다.

집으로 걸어가다보면, 야생 고라니가 튀어나온다.

A가 말하고자 하는 건, 첫 번째 상자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전화를 나누다보면, 알 수 없는 요구를 받곤 한다.

B가 말하고자 하는 건, 두 번째 상자안에 넣어달라는 것이다.

C가 말하고자 하는 건, 세 번째 상자안에 넣어달라는 것이다.

매우 화가 난 나는 A,B,C를 한 곳에 담아둔다.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88405800

<흔한제목>

1.

갈대밭사이 논두렁길을 따라가다보면,

문득 주황빛 노을이 붉거져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푸른 하늘 사이로 날아가는 철새들을 바라보며,

어김없이 찾아오는 쌀쌀한 바람이 추억을 알려주곤 하였다.

인적드문 오솔길을 따라가다보면,

문득 노란빛 달과 별이 붉거져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곤 히였다.

빨간색 십자가가 빛나던 어릴 적 추억이란,

나무색 책상에 앉아 추억을 회상하던 삼동(三冬)의 제목이었다.

2.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을 보며, 열심히 싸움을 부추기곤 한다.

커다란 녀석이 이길지, 재빠른 녀석이 승리할지, 재보곤 하였다.

피아노 소리를 듣고, 제일 뒷쪽의 답지를 탐구하던 나는,

풀리지 않는 머리를 움켜쥐고, 놀이터로 돌아가는 나였다.

늦은 밤마다 친구를 보낼때마다, 이따금씩 눈물을 훔치곤 하였다.

늦은 밤마다 꾸중을 들을때마다, 이따금씩 눈물을 훔치곤 하였다.

양 뺨을 붉게 물들었던 성인의 추억이란,

한 뼘을 빼내어 슥슥 지우는 선풍(旋風)의 제목이었다.


출처: https://blog.naver.com/put_on_armer/223289415281

<기억, 추억>

1.

기억이란 건, 내가 글을 읽었다는 것과 글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읽은지를 몰라 한참을 잃고,

무엇을 잃은지를 몰라 한참을 읽은 나였습니다.

비 내리는 날엔, 내가 비를 읽었다는 것과 비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읽은지를 몰라 한참을 잃고,

무엇을 잃은지를 몰라 한참을 읽은 나였습니다.

비내리는 추억을 내가 읽었는지도, 잃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읽은지를 몰라 한참을 잃고,

무엇을 잃은지를 몰라 한참을 읽은 나였습니다.

2.

추억이란, 내가 사진을 간직한 것과 사진을 값진것입니다.

허름한 가게에 내놓은 앨범을 값지고

허름한 마음에 내놓은 사진을 간직하는 나였습니다.

깊은 숲속에는, 내가 사진을 간직한 것과 사진을 값진것입니다.

한 아이의 나무 사진을 값지고,

한 아이의 동물 사진을 간직하는 나였습니다.

깊은 숲의 추억을 내가 값을 지불해야 하는지, 간직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인의 삶의 값을 치루고,

노인의 사진을 간직하는 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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